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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그놈의 비트코인 1만개"…390억 날렸다, 지옥이 시작됐다[코인지옥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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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20회 작성일 23-06-09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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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지옥에 빠진 대한민국

코인 광풍의 미몽(迷夢)에 한국 사회가 지불해야 할 대가는 국가적 재난에 가깝습니다. 가상자산 불법행위 피해액은 수사당국이 지난 6년간 파악한 것만 5조 7000억원, 사기에 속아 목숨을 잃은 이도 부지기수입니다. 태풍 매미(피해액 4조원), 조희팔 다단계 사기(피해액 5조원)를 능가하는 피해 규모입니다. 지난달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강남 납치·살인사건 역시 코인 사기 의혹이 발단이 됐습니다. 2020년을 전후해 불었던 코인 광풍, 그리고 그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얘기를 취재했습니다.

“그놈의 비트코인 1만개…”(강영준씨 유족)

강영준(가명, 사망 당시 50세)씨에게 2020년 FTB그룹 대표 이모씨가 접근해왔다. 이씨는 “손실을 만회할 기회”라며 자신이 발행한 FTB(Free Tool Box) 코인에 투자하라고 꼬드겼다. 강씨는 이미 2017년 비트코인 채굴기에 투자하면 수익을 안겨준다는 비트클럽네트워크 다단계 사기에 속아 수억원을 날린 상태였다. 의심하는 강씨에게 이씨가 보여준 게 바로 ‘비트코인 1만개’(2020년 6월 기준 1312억원)였다. FTB 코인의 가치가 떨어지더라도 예치된 비트코인 1만개로 원금을 보상해 줄 수 있다는 FTB 측 설명이 강씨에겐 믿음의 지렛대가 됐다. FTB 이사 탁모(44)씨가 보여준 전자지갑 화면 속 ‘10,000’이란 숫자, 변호사 공증까지 받은 위탁 보관 계약서에 강씨의 믿음은 확신이 됐다.

강씨는 그러나 FTB코인 백서를 아무리 봐도 도무지 실체가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이씨·탁씨는 FTB코인이 국내 4대 거래소는 물론 미국 바이낸스에도 상장될 것이라며 강씨를 안심시켰다. 프라이빗세일(상장 전 소수의 초기 투자자에 값싸게 코인을 파는 행위) 기간 개당 12~18원에 구매한 코인의 가치가 한 달 뒤에는 30원, 국내 상장 때는 200원, 바이낸스 상장 때는 1300원까지 뛸 거라고 했다. 탁씨는 비트코인 1만개를 벌어들인 트레이딩(해외 코인 선물거래) 비법도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생업을 잠시 접고 탁씨가 진행하는 트레이딩 교육생으로 들어가면서 강씨는 저축, 대출금, 세입자 전세금을 총동원해 10억원을 FTB코인에 ‘올인’했다.

그러나 강씨는 한 푼의 수익금도 손에 쥐지 못했다. 2020년 8월 군소 거래소인 프로비트에 상장된 FTB코인은 락업(Lock-up·동결)이 걸려 회수 불가 상태에 빠졌다. “왜 수익이 나지 않느냐”고 따져도 “곧 상장되니 기다리라”는 말만 돌아왔다. 강씨를 따라 2억원을 투자한 유족 A씨는 “지금 생각해 보면 미친 사람 같겠지만, 비트코인 1만개가 찍힌 전자지갑을 보는 순간 이성이 마비돼 버렸다. 탁씨는 당시 교주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10개월을 참고 기다렸지만, 원금을 돌려준다던 약속도 희미해졌다. FTB 사무실을 박차고 나온 게 2021년 4월, 그로부터 두 달 뒤 FTB코인은 휴지조각이 됐다.

강씨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강씨는 탁씨가 한 변호사에 맡겨 놓았다는 비트코인 1만개 전자지갑 주소가 당초 자신에게 보여준 전자지갑 주소와 다르다는 걸 알아채곤 사기임을 직감했다. “곧 연락하겠다”며 강씨를 따돌리던 탁씨 측과 연락은 결국 두절됐다. 강씨는 전 재산을 날렸다는 충격과 스트레스로 대인기피증·불면증에 시달렸다. 평소 산악회 활동을 하며 히말라야 등반에 도전할 정도로 외향적이고 건강했던 그의 삶은 급격히 황폐화했다. 매일 밤 술에 의존하며 두문불출했다.

강씨는 결국 지인이 주도하는 피해자 공동 대응에 참여해 탁씨를 고소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 참고인 조사를 앞두고 있던 지난해 10월 어느 날 그는 지인 B씨와 통화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그냥 죽고 싶다”고 토로했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법으로 해결해 보자”고 달래는 B씨의 말에 마음을 다잡았지만, 경찰에 출석하기로 한 10월 21일 강씨는 자신의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 옆에는 비어있는 1.5ℓ짜리 페트 소주 2병이 놓여 있었다. 의사의 소견은 내인성 심장마비였지만, 유족이 부검을 원하지 않아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새벽에 숨진 강씨를 정오 무렵 발견한 건 강씨가 큰돈을 벌어 행복하게 해 주겠다던 노모였다.

강씨에게 투자를 권했던 FTB그룹 대표 이씨도 2021년 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씨는 유서에 “비트코인 1만개가 있다는 탁씨의 약속을 믿고 사업을 진행했다. (중략) 사람을 믿고 순진하게… 이렇게 모든 것이 나의 명의와 책임으로 돌아서는 것에 대해 한탄하고 분개한다”고 적었다. FTB 코인 투자를 부추긴 자신도 탁씨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주장이다.

경찰은 지난 2월 탁씨에게 사기 혐의가 있다고 보고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현재까지 드러난 FTB코인 투자자들의 피해액은 391억원. 탁씨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투자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했다. 돈을 더 받아내려는 투자자들이 이씨의 죽음을 내 탓으로 돌리며 협박하고 있다. 비트코인 1만개도 분명히 사용할 수 없는 코인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피해자 대리인 정용기 변호사(법무법인 대건)는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은 스테이킹을 중도 해지하면 보상으로 받는 코인이 적어진다는 취지일 뿐 피해자들은 비트코인 1만개로 손실을 보상받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애당초 비트코인 1만개 자체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코인 거래에 관한 규제 논의가 표류하는 사이 코인은 이미 다단계 사기 범죄의 주종으로 자리 잡았다. 코인 사기로는 역대 최대 규모(피해자 약 5만3000명, 피해액 약 2조2500억원)인 브이글로벌 다단계 사기 주범 이모 대표에게 대법원이 지난 2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유사수신 등의 혐의로 징역 25년을 확정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 밖에 서울동부지검은 지난 11일 파일코인 채굴 사업에 투자하면 원금과 수익을 보장한다고 속여 1429명으로부터 93억원 상당의 암호화폐를 편취한 일당 10명을 재판에 넘겼고, 대구경찰청은 최근 국내 공공기관과 주요 기업의 간편결제에 사용된다고 속여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금을 편취한 패스토큰 발행사 관계자를 검찰에 구속송치했다.

코인 사기 의혹이 잔혹한 살인으로 비화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서울 강남구 납치·살인 사건의 발단이 된 퓨리에버코인 얘기다. 유니네트워크 이모(59) 대표가 만든 이 코인은 프라이빗세일 뒤 브로커에게 뒷돈을 주고 국내 대형 거래소에 상장, 시세조종(MM)으로 가격을 올려 물량을 털어내는 방식으로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줬다. 피해자들이 원금을 돌려달라고 항의하자 초기 투자자 사이 책임 공방이 일었고, 결국 고소전을 벌이던 양측의 갈등이 청부살인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일선 경찰서 민원실에는 정체불명의 코인 사기로 피해를 봤다는 이들의 고소장이 줄을 잇고 있다. 강남서는 한류 콘텐트를 미끼로 한 K코인, 관악서는 대기업 회장이 투자했다고 홍보한 A코인, 동대문서는 코인 채굴권을 판매해 투자자를 모집한 P코인 사기 의혹을 각각 수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2017년 ‘김치프리미엄’으로 암호화폐 가격이 폭등할 때부터 암호화폐 관련 범죄도 급증하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검찰 관계자도 “누구나 쉽게 휴대전화 클릭 몇 번으로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이 코인이 사기 범죄의 매개로 쉽게 활용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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